생각이 달라 아름다운 프놈펜한국국제학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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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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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쳐 왔다. 퇴임을 앞두고 아쉬움은 없었다. 홀가분함이 먼저 다가왔다. 퇴임 후 첫날, 어제는 먼 옛날로 사라지고 자연스레 시골살이로 이어지는 모습이 나 스스로도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학교생활은 사학에서 시작하여 사학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래도 학교를 네 곳이나 옮겼다. 옮길 때마다 지난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자라는 능력을 보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진학 책임을 맡을 때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퇴임할 때 학교에 대한 미련은 전혀 남지 않았다.

그런데 퇴임 1년 후 뜻하지 않게도 캄보디아 프놈펜한국국제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낯섦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 가지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36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중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나이에 과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교육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먼저, 우리 아이들이 자기 삶에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다. 퇴임 전까지, 우리 아이들이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이러한 목표에 다가서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제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정보화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어떻게 수업해야 아이들이 자기 삶에 자긍심을 갖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진학을 위한 시험, 흔히 말하는 수능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으니, 아이들의 생각을 열어 주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펼치고,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기의 삶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질문'과 '평가'라 생각한다. 자기가 원하는 답을 정확히 얻을 수 있도록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을 평가하여 필요한 것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생각을 기르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예습과 복습은 하지 않아도 된다. 숙제는 당연히 없다. 단지 수업 시간에만 집중해 달라. 내 수업 목표는 수업하는 동안 여러분들을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모르면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좋다. 그리고 가능하면 여러분들의 생각을 친구들과 공유하도록 할 것이다.
수업 준비는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 학습지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수업 시간에는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읽고, 자기의 생각을 쓰면 된다. 아이들이 학습지 활동을 하는 동안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쓰는 학습지를 살펴보면서 해결할 수 있도록 살짝살짝 도움을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자기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펼치고, 나는 아이들의 생각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1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것이 고마웠다. 두려움을 안고 출발한 중학생 1, 2, 3학년 수업을 무사히 마친 내가 대견했다.
2학기에는 조금 욕심을 내었다. 2학기에는 수행 평가를 12번 한다. 문학 수업할 때는 아이들의 공감과 생각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비문학 수업할 때는 그에 대한 평가나 적용에 초점을 둔다.
얼마 전 아이들 학습지를 보고 혼자 흐뭇했다.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공선옥의 소설 <일가>가 실려 있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 공선옥의 <일가>를 읽고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이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엄마 : 엄마는 아빠의 사촌 형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지만, 불편한 기색 없이 아저씨에게 엄마가 가장 아끼는 교자성을 펴서 저녁과 술을 대접했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잘해주었는데, 아저씨는 며칠 있어도 떠나갈 생각이 없다. 그러던 중 나가 미옥으로부터 받은 편지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크게 다투었다. 엄마와 아빠가 다툰 것은 사실 나의 편지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아저씨를 내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아저씨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 힘듦을 참아왔는데, 아빠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전혀 몰라주고 위로해 주지도 않았다. 엄마는 얼마나 슬펐을까?"
- 공선옥의 <일가>를 읽고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은 누구이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엄마 : 엄마는 아저씨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보면 나 같아도 힘들었을 것 같다. 이 감정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말해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무 이야기도 안 하고 엉뚱한 아빠에게 말꼬투리를 잡아 싸움을 벌여 놓고는 혼자 집을 나갔다. 이 행동은 대놓고 아저씨에게 눈치 보라는 행동이고, 아들의 불안감을 높이는 행동이고, 남편과 오해가 더욱 쌓이게 하는 행동이다. 엄마의 이러한 모습은 공감되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인물을 두고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누가 맞고 틀리고 따질 필요가 전혀 없다. 누구의 아픔과 힘듦이 먼저 나에게 다가오는가 문제이다. 한 학생은 엄마의 힘듦이 눈에 먼저 들어왔을 것이고, 또 한 학생은 아저씨의 외로움이 먼저 들어왔을 것이다.
문제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다. 곁에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아간다면,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등장인물 모두 공감이 되질 않는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모두 이해 안 됨 : 미옥이가 끝났다는 말에 다시 미옥이에게 다가가 보지도 않고 그대로 끝났다고 단정 짓는 나의 모습이 이해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집을 나가는 엄마도 이해 안 된다. 안 가고 버티는 아저씨를 보내려 하지 않는 아빠도 이해 안 된다. 안 가고 버티는 아저씨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재미있는 주장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고, 충동적인 행동으로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으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르는 척하지 말고, 상대의 눈치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이는 아직 어릴지라도 생각은 어리지 않다.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면 된다.
세 글을 아이들에게 읽어 준다. 나와 다른 학생의 생각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다름을,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과 어느 선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 나갈 것이다.
며칠 전 중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학습지를 열심히 채우고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한 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모습, 곁에 친구를 도와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교무실로 돌아와 2학기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에 기록한다.
"'정보 전달하는 글 쓰기'를 학습하고 난 뒤 모둠별 글 쓰기에서 모둠 조장을 맡아 '앙코르와트의 아름다움'이란 글을 완성함. 글을 쓰기 위해 모둠의 의견을 모으고,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는 일을 책임감 있게 진행함. 역할 분담에서 자신이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 맡은 바를 어려워하는 친구가 있으면 친절하게 도와줘 그 친구가 맡은 바를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줌."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큰 중심인 대학 입시에서 한 걸음 비켜나니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재캄보디아 한인회, 뉴스브리핑 캄보디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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